
ITO BINDERY: 종이와 제본 기술만으로 만든 메모패드
지금도 책상 위에 종이 메모패드를 두고 계신가요? 좋은 메모패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있고, 하루 종일 꺼내 두어도 보기 좋으며, 펜이 부드럽게 미끄러집니다.
ITO BINDERY의 메모패드는 바로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쿄의 동네 제본 회사가 디자이너와 함께 개발한 제품으로, 질 좋은 일본 종이로 정성껏 만들어져 지금은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쿄 스미다구의 작업장을 찾아 이토 사장에게 브랜드의 탄생 배경과 종이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제본 회사
이토 바인더리의 역사는 1938년, 도쿄 에도가와구에서 전단지를 재단하고 대학 노트를 제본하는 작은 종이 공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후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주로 지역 인쇄 회사의 의뢰를 받아 기업 카탈로그와 팸플릿을 대량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1982년에 현재의 회사명인 Ito Bindery Co., Ltd.(이토 바인더리 주식회사)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스미다구에 자리를 잡고 판촉물, 사무용품, 문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방문 당시 오랜 세월 사용해 온 기계 앞에서 장인들이 꼼꼼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자동차를 사기 전에 인쇄된 카탈로그를 먼저 펼쳐 보았지만, 지금은 견적서조차 대부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확인합니다. 이토 바인더리는 세상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 왔습니다.
“기업 일을 하면서 종이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주문 제작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토 사장은 말합니다. “사용하는 분들에게 직접 건넬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자체 브랜드를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제본 회사는 드물어, 이토 사장의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와의 만남에서 탄생한 자체 브랜드
2008년 무렵, 스미다구에서 도쿄 스카이트리 건설이 시작될 즈음, 구는 지역 공장과 디자이너를 연결해 신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토 바인더리는 여기에 손을 들었고, 그곳에서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갈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우리 장인들은 오랜 경험으로 제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디자인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이토 사장의 설명입니다.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데 급급하면 만들기 쉬운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래서는 고객에게 닿지 않으니 흔들리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디자이너는 공장을 둘러보았고, 두 사람은 함께 무엇을 만들지 고민했습니다. 그 답은 제대로 만든 메모패드였습니다. 인쇄는 전혀 없이, 오직 종이와 제본 기술만으로. 그렇게 크리에이터를 위한 품질 높고 세심하게 디자인된 도구가 탄생했습니다.

세계로 나아간 브랜드
브랜드는 이후 굿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ITO BINDERY가 도쿄의 대규모 선물 박람회에 출품했을 때, 일본 바이어뿐 아니라 해외 방문객의 눈길도 사로잡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대화가 가격 이야기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디자인의 가치부터 이야기했다는 사실에 이토 사장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이 관심을 계기로 회사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파리의 Maison&Objet에 출품했습니다. “정말 손이 많이 갑니다.” 이토 사장은 털어놓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준비도 힘들어요. 반년 전부터 부스 디자인을 시작하고, 두 달 전부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첫 출품 전까지 회사는 해외 거래가 전혀 없었고, 평소 업무를 이어 가면서 바이어에게 배송비를 설명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배워 나갔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우리 제품을 쓰는 사람은 비슷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히 건축 사무소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터가 많아요. 지금은 컴퓨터가 당연한 시대지만, 크리에이터는 여전히 타이핑하기 전에 손으로 먼저 적습니다.”
현재 ITO BINDERY는 주로 유럽, 그리고 미국과 중동의 고객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해외 출품은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과도 보장되지 않지만, 제품은 확실히 자신의 고객을 찾았습니다. 언어를 넘어 전해지는 디자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제대로 만든 메모패드
ITO BINDERY의 메모패드는 일본과 해외에서 모두 사용되며, 이제는 해외 고객이 국내 고객보다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종이는 정말 좋습니다.” 이토 사장은 말합니다. “균일하고 품질이 안정적이에요. 다른 나라 종이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메모 블록에는 표지가 없어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종이는 결이 곱고 고르게 짜여 있어 필기감이 부드럽고, 블록의 옆면은 매끄러운 감촉에 색도 완벽하게 균일합니다.


단지 세련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드로잉 패드는 제본 기술의 진수를 보여 줍니다.

제본된 가장자리에는 미세 타공이 되어 있어, 옆으로 당기면 종이가 깔끔하게 뜯어지고 표준 규격 크기의 종이가 남습니다.

이 미세한 타공은 이런 칼날로 만듭니다.

두꺼운 받침판이 각 블록에 안정감과 쾌적한 필기감을 더해 줍니다. 앞면에 로고나 문자가 없는 심플한 디자인은 어떤 책상에도 잘 어울리고, 일을 시작할 때 기분을 한층 끌어올려 줍니다.
기계와 손으로 만드는 제품
작업장을 걷다 보면 이곳의 어떤 제품도 기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사용해 온 설비 앞에는 숙련된 장인들이 서 있습니다.

옆면에 들쭉날쭉함이 생기지 않도록 종이를 신중하게 재단합니다.

재단은 두 단계로 이루어지며, 장인이 손으로 종이를 잡아 이끕니다.

각 패드의 받침판에는 “ITO BINDERY”라는 글자가 민형압(블라인드 엠보싱)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장인들이 이 수동 기계로 한 장씩 눌러 찍는데, 정겨운 향수가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모든 ITO BINDERY 메모패드에는 각인된 이름이 뒷면에 있습니다. “쓰는 사람은 로고를 보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이토 사장은 말합니다. “괘선조차 인쇄하지 않아서 그저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로고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이곳에서는 인내와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합니다. 크리에이터 사이에 팬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포장 역시 하나하나 손으로 합니다.

예전에는 플라스틱 포장을 사용했지만, 환경을 생각해 방문하기 몇 년 전에 모두 종이로 바꿨습니다. 플라스틱이 더 싸고 다루기 쉽겠지만, 이곳의 우선순위는 분명하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종이의 가치를 지켜 나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토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세계는 물론 일본에서도 저희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패드가 사람들이 매일 자연스럽게 쓰는 물건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라인을 늘리기보다, 지금 있는 제품을 정성껏 계속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에요. 팬데믹 이후 단종되는 종이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지 회사가 온갖 종이를 만들었지만, 수요가 줄면 생산을 멈춥니다. 어떻게 가치를 더하고, 어떻게 계속 길을 찾아 나갈지가 관건입니다.”

오랜 시간 차근차근 쌓아 온 자체 브랜드는 이제 이토 바인더리 사업의 한 축이 되었고, 브랜드를 통해 이어진 인연으로 새로운 기업 고객도 생겼습니다.
“인쇄 업계에는 힘든 시기입니다. 정보가 웹사이트로 옮겨 가고 종이 수요가 줄더라도 좋은 것은 반드시 남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종이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은 기분으로 일을 시작하고, 거기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희 패드는 그래픽 디자이너나 제품 디자이너뿐 아니라 회의에서도 쓰입니다. 이야기하면서 드로잉 패드에 스케치를 하면 논의가 더 활발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습니다.” 일부 호텔 객실에도 이 패드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책상 위의 아름다운 메모패드는 기분을 좋게 해 줍니다.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무지의 종이는 편안하게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도록 도와줍니다. 이토 사장과 디자이너, 그리고 장인들이 이렇게 세심한 패드를 어떻게 만들고 지켜 가는지 직접 보았습니다. 종이는 그저 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좋은 종이와 평범한 종이가 있으며, 우리가 쓰는 물건을 스스로의 안목으로 고르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앞서가는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취재에 협조해 주신 이토 사장님과 ITO BINDERY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